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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힘, 문화강국 실현

‘백제의 미소’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명, 백제 미소보살 시리즈의 완성

자연스러운 자세와 부드러운 천을 표현한, 섬세하고 뛰어난 제작기법으로부터 7세기 백제의 우수한 조형성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미덕을 지닌 백제예술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제의 미소’ 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명,
백제 미소보살 시리즈의 완성

고도로 발달하고 찬란했던 백제의 문명,
백제인들의 빛나던 예술혼과 장인정신
자연스러운 자세와 부드러운 천을 표현한, 섬세하고 뛰어난 제작기법으로 부터 7세기 백제의 우수한 조형성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미덕을 지닌 백제예술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13년의 은둔의 세월을 깨치고
나타난 백제미소보살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백제 미소보살을 반출한 ‘이치다 지로’는 일제 강점기 수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였습니다. 일본으로 반출된 이후, ‘이 불상은 공개하지 말라’는 ‘이치다 지로’의 유언에 따라 비공개 되었다가 2018년 한국에 처음 공개되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재 지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 중 신라 연지사 동종 등 한국문화재 150여 점을 국보 등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백제미소불 환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천여 고분을 도굴 당한 백제권역의 문화유산 회복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내력
규암면 출토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07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옛 절터에서 한 농부가 우연히 땅을 파다가 쇠솥을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서 불상 두 구가 발견되었고 곧 일제 헌병대에 의해 압수되었다고 합니다. 압수된 이후 경매에 의해 일본인 니와세 히로아키(延瀨博幸) 에게 입찰되었고 니와세는 1922년 이 금동보살입상(26.5cm)을 대구의 이치다 지로에게 다시 팔았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 보살상이 100년만에 공개된 규암면 출토 금동관음보살입상입니다.
출토지역과 연대가 정확하게 확인되고
일본으로 반출된 내력과 소장자가
정확하게 밝혀진 불상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불상은 약 150여 구 정도 됩니다. (서일본-약 100여점, 동일본-약 50여점)이 가운데 국적 및 출토지, 이전 경위, 소장 내력이 정확하게 알려진 불상은 규암면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유일하며 조형적인 측면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7세기 백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보살상이며
‘백제의 미소’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

머리에 쓴 삼면보관 중앙에는 대좌에 앉은 아미타화불이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관 위로 높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은 단아함을 돋보이게 하며, 미소를 머금은 자비로운 표정과 우아함은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천의를 걸치고 보병을 든 불상은 허리를 틀고 오른 다리를 약간 들어올린 삼곡의 자세’(일명 S라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불상의 인자한 표정과 더불어 건강하고 싱싱한 생기는 마치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정교하고 섬세한 천의와 군의 자락과 함께, 가슴의 장식띠에는 백제금동대향로의 장식과 일치하는 구름무늬(당초무늬)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같은 제작기법과 문양이 쓰여졌다는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이 불상 또한 백제금동대향로와 동시대 장인 작품으로 추정되어집니다. 자연스러운 자세와 부드러운 천을 표현한, 섬세하고 뛰어난 제작기법으로부터 7세기 백제의 우수한 조형성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미덕을 지닌 백제 예술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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